초현실주의 그림으로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 의 그림에는
아내이자 어머니같은 조재였던 갈라가 자주 등장한다.






갈라는 본디 시인 폴 엘뤼아르(내가 정말이지 사랑해 마지않는..)의 아내였는데,
달리의 정열적인 구애에 넘어가 남편을 버리고 달리와 살게된 사람이다.




언젠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달리 전시회에서 그의 그림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했다는
두사람에 대한 아주 인상적인 일화를 알고있다.





두사람에게는 여러해동안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토끼가 한마리 있었다.


어느날 저녁,

고기요리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난 뒤 갈라가 물었다.


"여보, 지금 우리가 먹은게 뭔지 알아요?"


"글쎄.. 모르겠는걸..."



뒤를 이은 갈라의 대답은 달리로 하여금 먹은것을 다 토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 토끼였어요."







갈라는 사랑하는 토끼가 자기안으로 들어와서 자기 몸의 일부가 된 것을 몹시 기뻐했다고 한다.

너무나 토끼를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그런 형태로나마 완전히 '소유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불현듯,
이것이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즈키 다이세츠의 명저 [선과 정신분석]에 등장하는 바쇼 테니슨 의 시를 떠올렸다.



일본 최고의 시인 마츠오 바쇼
 평생을 방랑하며 인생의 무상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열입곱 글자로 된 
하이쿠 로 노래한 사람이다.



가만히 보니 / 냉이꽃이 피었네 / 생울타리에





이렇게 사물에 대한 관심이
'바라본다' 는 행동에서 멈추는 것은
지극히 동양적이다.
더 자세한 속내는
우리가 어차피 접근할 수 없기에 우리 지식의 여백 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질문도,
사랑도 그렇다.





가을 깊은데 / 옆방은 / 무엇 하는 사람인가  하고 그만인 것이다.





그사람이 내 옆방에 있다는 사실 그 만큼
내가 혼자임을.

이처럼 
모든이의 삶에 있어 고독함은 예외없이 수반되는 것임을 절실히 가르치는 상황은 없다.

그러니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것이 무슨 덧없는 짓일까.




바쇼가 몸담았던 시대는,
덧없고 헛되이 지나가기 때문에 인생이 아름답다
시대정신이 지배하던 때였다.
그래서
[우키요에] 라는 그림이 나왔다.

만물은 퇴락하고 말것이라는 불교적인 염세가
한편으로는 소유를 부정하고 존재를 확인하는 여유를 가능하게 했다.

이른바,
인생에 대해 미학적인 거리를 두는 것 이다.




그런데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 은 다르다.



담장 틈새에 핀 꽃 한송이 / 그 틈새에서 너를 뽑아 /
이렇게 손안에 놓는다 / 그것도 뿌리째






테니슨 은 아름다운 꽃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뿌리째 뽑아 손에 쥐어야 그 꽃을 '알게된다' 고, 그래야
세계를 이해한다 고 생각했다.

꽃의 죽음과 사람의 지식이 맞바뀐다.


사랑도 그렇다

철저한 헌신과 합일만이 사랑을 증명한다 고 믿는다.






갈라는 자기와 토끼 사이의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토끼를 잡아먹는다.


카톨릭의 미사와 개신교의 성찬에서는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 밀떡을 받아먹는 행사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를 영원히 기억한다 는 것이다.


이렇게 영원히 기억해야할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
그 사이에 아무런 여백도 남지 않도록 하는것
서양의 방법 이다.



합일은 미학적 거리보다 소중하고,

사랑은 곧 소유를 의미한다.






방황하는 서양 정신이

이제 동양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들 말한다.
달라이 라마는 서양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지 오래이다.
서양의 자연관을 송두리째 뒤흔든 양자물리학의 어법은
어느덧 불교의 표현을 닮아가고 있다.

예측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물은 우리가 보기 시작해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 는 식으로 말이다.




동양의 인테리어는 일본의 도코노마 처럼 거기에 아무것도 두지 않아도 좋을 여백을
허전할 정도로 많이 허락한다.
공간은 만들어 나가되 여백을 두지는 않던 서양 건축도 어느 순간부터
동양을 배워왔다.



오래전 일이지만 미국 승려 한 사람이
우리나라 어느절의 주지가 되어 화제에 오른적이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동양정신의 우월함을 말해준다고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람들은
스스로 완전한 모순에 빠지고 말것이다.

왜냐고?




동양 정신앞에서 사물은,


우월한것도, 열등한것도 없이 다만

그대로 있을 뿐 이라 그렇다.





모란 잎 져서 / 서로 포개어진다 / 두 세 이파리

이렇게...





사랑에 관한, 그리고 마음과 정신에 관한 합일 또한  이렇듯

자연스레 잎이 져서 서로 포개어지듯

자연스럽디 자연스러운 여백을 거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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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unded Soul 2008/10/18 11:1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잘 읽었습니다.
    정말 좀 그런게 있는 것 같아요.
    서양의 사상들은 사물을 이해하려들고 자신들의 좁은 이성에 어떻게든 구겨넣어버려서 자칫하단
    소화불량이되버리죠.
    그에반해 동양사상들은 그저 사물자체를 인정해버린 후 저건 저렇게 만들어져서 저런가보다.
    라는 식이 많은 것 같아요. ㅋㅋ

    둘이 합치면 저건 정말 저렇게 만들어졌는데
    맛있어보인다.
    좀만 맛봐볼까? 정도가 될까요? ㅋㅋㅋ

    • 심사베베꼬인 스크류바 2008/10/21 07:51  address  modify / delete

      자신들의 좁은이성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와닿아요..

      맞아요. 소화불량...하하

      사실, 이해하는것보다 인정하는것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것 같아 보이지만
      더 생각을 많이 해보면 이해하는것보다 한차원 깊은곳에 인정하는것이 있는걸거예요..

      두가지를 적절히 믹스한 맛..
      하하

      저도 맛보고 싶네요~?

      하하

  2. 츠쿠시 2008/10/28 19:5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언니야~ ㅎ